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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지우지 않고 채워가는 정체성: 이중문화와 이주배경아동의 적응

  • · 작성자|온주종합사회복지관
  • · 등록일|2026-05-19
  • · 조회수|26
지우지 않고 채워가는 정체성: 이중문화와 이주배경아동의 적응
 
기고자 : 김현아 / 굿네이버스 온주종합사회복지관 팀장
 
2024년 방영된 ‘흑백요리사’에서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린 장면이 있습니다. 에드워드 리 셰프가 서툰 한국어로 자신의 정체성을 ‘비빔밥’에 비유하던 순간입니다. 미국인으로 살아왔지만 자신의 뿌리인 한국의 요소를 억지로 도려내지 않고, 오히려 그 두 세계를 멋지게 버무려 자기만의 요리를 완성해낸 모습은 진정한 ‘적응’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했습니다.
 
행정안전부 통계에 따르면 충청남도는 2015년 이후 9년 연속 전국에서 인구 대비 외국인 주민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입니다. 또한 교육통계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충남의 이주배경학생은 1만 3,430명으로, 최근 5년 사이 34% 이상 증가했으며, 특히 중도입국·외국인가정 학생은 같은 기간 121% 늘어났습니다. 이제 다문화는 우리 지역의 일상이자 거스를 수 없는 흐름입니다.
 
5월은 가족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달이지만, 누군가에겐 정착이라는 현실의 벽이 더 높게 느껴지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경제적 자립이 급하다 보니, 아이들에게는 “빨리 한국어를 배워라”, “한국 아이들처럼 행동해라”며 무조건적인 동화만을 요구하곤 합니다. 이 과정에서 부모의 문화와 언어는 일단 뒤로 밀려나기 일쑤입니다. 아이들 또한 다르게 보일까 봐 부모의 언어를 주저하고 자신의 배경을 가리게 됩니다. 하지만 뿌리를 부정한 채 살아가는 경험은 아이들에게 큰 혼란과 상처를 남깁니다.
 
아이가 부모의 문화를 지운 채 한국적인 것만 채우려다 보면, 결국 자신의 절반을 잃어버린 채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됩니다. 부모와의 대화가 끊기고 마음의 문이 닫히는 것도 바로 이 지점부터입니다. 에드워드 리 셰프가 보여주었듯, 두 개의 문화를 함께 지니고 있다는 것은 성장의 ‘방해물’이 아니라 세상을 남들보다 넓게 볼 수 있는 ‘강력한 무기’입니다.
 
이제는 우리 사회가 이들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성숙한 관점으로 전환되어야 할 때입니다. 가정에서는 부모의 모국 문화를 아이의 강점이자 고유한 자산으로 존중하는 환경이 필요합니다. 더불어 지역사회 역시 이들을 ‘고쳐야 할 대상’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를 함께 배우고 성장해 나갈 소중한 이웃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아이들이 자신의 언어와 문화를 숨기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 우리 사회의 역할입니다.
 
비빔밥의 여러 재료가 어우러질 때 비로소 가장 깊은 맛을 내듯, 우리 아이들도 자신의 뿌리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한국 사회에 당당히 녹아들 수 있어야 합니다. 이중문화라는 소중한 자산을 품고 자라날 때, 아이들은 비로소 ‘진짜 적응’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