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몸과 마음이 숨 쉴 수 있는 일상,‘건강할 권리’를 말하다
필자가 자라던 1980년대, 동네 골목은 늘 웃음과 흙먼지가 뒤섞인 놀이터였다. 해 질 녘까지 딱지치기 판이 이어지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한마디에 숨죽여 서 있다가 친구와 눈이 마주치면 “이제는 네가 술래야”라며 웃음을 터트렸다. 비싸고 근사한 장난감은 없어도 시간이 훌쩍 흘렀고, 집에 돌아오면 얼굴이며 옷자락엔 땀과 모래로 흥건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반면 지금의 동네는 적막하다. 놀이터 미끄럼틀 위에도, 카페 구석 테이블에도 아이들은 고개를 떨군 채 손바닥만 한 화면을 집중해서 들여다본다. 친구와 나란히 앉아 있으면서도 시선은 게임과 영상으로만 향한다. 몸과 마음은 분주하고 바쁘지만, 어쩐지 얼굴엔 어린 시절의 해맑은 땀방울 대신 피로가 가득해 보인다.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2023 아동종합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 사회 아동·청소년의 전반적인 건강 상태는 양호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9세~17세 아동의 비만율은 14.3%로, 최근 5년 사이 4배 이상 증가했고 주중 평균 좌식 시간은 무려 11시간에 달하고 있다. 특히 아동의 평균 수면시간은 초등학생 8.4시간, 중학생 7.3시간, 고등학생 6.1시간으로, 세계보건기구(WHO)가 권장하는 수면시간인 9시간 이상에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복지관 청소년 틴친(Teen親) 캠프에 참여한 한 아이는 “(학업으로 인해) 1박 2일 동안 친구들과 온전히 놀 수 있는 시간이 없는데, 이런 기회가 생겨 너무 좋았어요”라며, “친구들과 레크레이션도 하고, 문화체험도 하며 신나게 놀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아이들의 인터뷰를 들으며 우리 사회는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이 ‘뛰놀고 싶다’는 말조차 꺼내기 어려운 사회가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되돌아본다.
이러한 아동 건강 위기에 대응해 굿네이버스는 아동의 건강권 증진을 위해 ‘지금, 움직여봐!’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 캠페인에서는 아동의 신체·마음 건강 실태를 알리고, 비만 예방, 수면 건강, 좌식 생활 줄이기 등과 같은 실천 수칙을 통해 아동들이 일상 속에서 건강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아동의 건강한 성장을 뒷받침하는 정책 제안과 서명도 함께 진행된다. ▲아동의 건강한 생활 습관 형성을 위한 제도적 지원 강화 ▲학교·지역사회 기반 아동 건강 프로그램 및 인프라 확대 ▲비만·마음 건강 고위험군 아동에 대한 공공정책 강화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며, 서명은 굿네이버스 홈페이지 및 전국 29개 지부에서 진행되는 대면 캠페인을 통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모인 서명은 향후 정부와 국회에 전달될 예정이다.
유엔아동권리협약 제24조는 “모든 아동은 건강하게 자랄 권리가 있다”라고 명시하고 있으며, 제31조는 “아동은 충분히 쉬고 놀 권리를 가진다”고 선언하고 있다. 이 두 조항은 우리 사회에 명백한 질문을 던진다.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며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우리는 제 몫을 다하고 있는가?”
아동의 건강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사회의 책임이자 아동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이다. 가정은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놓고 아이의 걸음에 속도를 맞추고, 학교는 신체활동의 시간을 회복하며, 지역사회는 안전하게 뛰놀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아이들이 다시 웃으며 마음껏 뛰놀 수 있도록, 이제는 우리 모두가 건강한 변화를 위해 함께 움직여야 할 때이다.